강남이 왜 욕을 먹느냐고? 구한말 사대부들을 보라 <-- 은하 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저는 서울 서초구에서 24년째 살고 있습니다. 평균적인 강남에서 자라난 사람들하고는 생활 양식이 꽤 차이가 있습니다만, 계속 강남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왔고,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는 약간은 압니다.
강남이 처음부터 부자들이 몰려 살던 곳은 아닙니다. 허허 벌판에 세운 뉴타운이죠. 제가 처음 이곳에 이사올 무렵만 해도 제가 졸업한 중학교 자리에는 논농사를 짓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 자수 성가한 사람들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집안 대대로 큰 부자인 사람들은 원래 살던 곳에서 옮기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고, 애초에 한국 전체의 부자 숫자 자체도 작았습니다.
어느샌가 땅값이 계속 오르고 강남 일대는 점차 최고급 주거 지역의 위상을 얻어갑니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굳어지는 시점은 역설적이게도 강남을 가장 견제했던 노무현 정부 시절입니다. 강남의 성장을 억누르고 국토를 균형개발하겠다는 의도였겠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부가 강남을 최고급 주거 지역으로 인증해주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서울 강남이 이렇게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았죠. 균형 개발 계획 때문에 전국 여러 지역의 땅값이 들끓었고, 돈을 쥐게 된 지방 사람들이 정부에 의해 인정받은 최고급 주거 지역인 강남으로 오려고 했고, 강남 집값은 하늘 높이 치솟았습니다. 강남에 집 있던 사람들은 저절로 큰 부자가 됐습니다.
이와 동시에 강남은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사방이 적입니다. 정부에서는 집에 세금을 마구 마구 올려서 그거 낼 능력 안 되면 20년씩 살던 곳에서 떠나라고 합니다. 정치권에선 툭하면 "우리는 국민 99%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면서 1%로 몰린 강남 사람들을 공공연히 적으로 돌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 사람들이 스스로 지배층이라고 생각할까요? 제가 알기로는 많은 강남 사람들이 스스로를 피해자, 사회의 소수자, 희생자로 여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은 걸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회가 이들에게 해 준거라곤 사실 집값 올려준 거 말고는 별 거 없습니다. 그리고 집값이 오른 건 집을 팔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갈 때에나 진짜 돈을 쥐게 되는 거지 그게 아니면 그냥 허상에 지나지 않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부모님 근처에 집 구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은 꿈이 상당히 멀어져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여기는 집단은 단결을 잘 합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 이전 시절의 호남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은하님의 글에서는 강남이 권력을 쥐었다는 걸 나타내는 증거로 대선, 총선, 교육감 선거, 종부세 완화, 강남 소비문화 등을 들었군요. 소비문화는 그냥 소비문화일 뿐 거기서 권력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종부세는 부동산 가격 급등을 막으려고 과도하게 올려놓은 면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완화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선거의 승리는 전 정부의 실착과 더불어 강남의 단결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강남 사람들의 재력이 그 근원인 건 아니죠.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따뜻한 사랑이 오가는 세상이라면 강남 사람들도 그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1%를 희생해 99%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는 건 올바르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비교적 잘 살았던 유태인들을 학살한 히틀러와 동급의 생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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