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노실분은 연락주세염 ㅎㅎ
제 연락처 모르시면 댓글 남기셔도 됩니다
추가] 티몬님 합류.
관련글:
실증 대 규범 논쟁
속옷 사이즈, 생리/예전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야시시한 옷차림을 하면 성추행당하기 쉽다." 라는 명제는, 실증적인 통계 조사를 해 보면 어느정도의 신빙성이 있는지 없는지가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저런 사실 명제는 가치판단과는 별개로 참 거짓을 판별할 수 있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저 명제를 단순히 사실 명제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조금 더 나가죠. "야시시한 옷차림을 하면 성추행당해도싸다."정도의 이야기로 나아가기 쉽습니다. 요즘 세상에 누군가가 저런 가치 판단을 내리면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사람이 성추행 당한 여성의 고통을 외면하고 저런 소릴 할 수가 있어!" 라고 비난하기에 앞서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지요.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고통과 아픔의 기억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잠시 비난하는 마음을 내려놓아봅시다. 비난하는 마음을 계속 들고 있으면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제가 보기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저런 가치판단을 내립니다. 한 부류는 잘 알려져 있고, 비교적 잘 이해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성추행 가해자들입니다. "상황이 저러하니 나는 어쩔 수 없었다"라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에서 저런 가치판단을 내리죠. 이들은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무지로 몇 가지 자기가 사실은 알고있는 것들을 덮어씌워 놓습니다. 하나는 피해자들의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여지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혹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부류입니다. 다른 여성들이죠. 이들이 저런 가치 판단을 내리는 데에는 좌절된 욕구가 밑바탕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합니다. 야시시한 옷차림도 그런 것들 중 하나죠. 하지만 이들은 "야시시한 옷차림을 하면 성추행당하기 쉽다"라는 꽤나 개연성있는 사실 명제를 믿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비해 스스로의 욕구를 포기하거나 억누릅니다. 이렇게 자신을 억눌렀던 사람들은, 억누르지 않고 맘껏 욕구를 발산한 뒤, 닥쳐온 좋지 않은 결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그저 무책임해 보일 뿐입니다. "누군 좋아서 참고 있는 줄 알아?" 인 겁니다. 이들은 '극기하고 있는나'와 '방종하는 저들'을 나눕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같이 느끼지 않아도 되는 자격을 스스로에게 부여합니다. 그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쳐왔고, 앞으로도 계속 도망치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정 반대편에, 맘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추행에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피해자들의 고통에 교감하며 함께 크게 상처입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도 앞서 두 부류의 사람들과 똑같이 보기 싫은 부분을 무지로 덮어 스스로를 보호합니다. 이들은 피해자가 고통스런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서 취할 수 있었던 다른 선택들을 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부르짖습니다. "지금 내가 괴로운 건 전부 너희 가해자들과, 가해자들을 옹호하는 너희들 때문이야!" 이들은 가해자들 역시 결국엔 늙고 병들고죽는 가련한 존재라는 것을 보지 않으려 합니다. 심지어는 "그놈들은 그래도 싸!"라고까지 생각할수도 있지요. 자기 자신도 똑같은 운명이면서도.
남을 탓하는 마음 속에는 거대한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지키려고 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사라집니다. 명예, 권력, 부, 건강, 사랑하는 사람. 이 모든 것들은 유한합니다.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나갈 운명에 처해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슬픔을 직면하는 건 보통 사람들에겐 너무나 두렵고 괴롭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안 보려 합니다. 사실은 알고 있지만 무지로 덮어씌웁니다.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이 사라지는 건 어떤 다른 누군가 때문이라고 비난합니다. 그 사람만 아니었다면 영원히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가해자가, 그리고 피해자가 당해도 싸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모두 피해자의 고통을 안 보려 합니다. 사실은 느끼고 있지만 무지로 덮어씌웁니다. 남을 탓하는 우리 모두는 은밀히 이 무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무지를 이용해서 우리는 스스로의 책임을 덜어냅니다. 그 결과 세상엔 점점 괴로움이 늘어갑니다.
내가 괴롭지 않으려면 세상의 괴로움을 줄여가야 합니다. 세상의 괴로움을 줄이려면 우선 나의 무지를 걷어내야 합니다. 보지 않으려고 회피하던 것들 직시해야 합니다. 우선 자기 맘의 상처부터 치유합시다. 남 탓하면서 자기 맘의 상처를 치유할 책임을 외면하지 맙시다. 약간의 용기를 가지고 자기 맘의 상처를 직시합시다. 아픔을 절절히 느낍시다. 맘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은 결국 이 방법밖엔 없습니다. 그리고는 이때껏 회피하고 있던 자신의 책임들을 돌아봅시다. 나의 행복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임을 직시합시다.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나 역시 행복하지 않음도 직시합시다. 내 생명을 포함한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의 유한함도 직시합시다.
최근 덧글